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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상구 (2010-02-08 11:58:04, Hit : 3857, Vote :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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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의할 줄 아는 인간이 자유인이다!
<회의할 줄 아는 인간이 자유인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며칠 전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을 방문해 국립역사박물관에 들렀다. 거기에서 감동을 느낀 것은 굳이 그 유물의 작품성 때문은 아니었다. 단순비교가 가능한 부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교를 하자면 아랍 상인을 통해 먼 북유럽 오지까지 유입된 인도계 불상을 최상의 보배로 여겨 추장의 묘에 부장품으로 곁들인 바이킹의 거친 솜씨에 비해서야 신라 금관이나 백제 향로는 당대로서는 선진문물의 표징처럼 보인다. 감동을 준 것은 다름이 아닌 이 박물관의 유물 배치법과 해설법이었다.

바이킹 유물 위주의 제1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천년 전에 이 땅에서 ‘스웨덴 민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큼직한 해설서부터 보였다. 그 뒤에는 수많은 지역 문화권들과 이민자들이 어떻게 해서 오랜 과정을 거쳐 오늘날 스웨덴 국민을 형성했는가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극우파들이 어떻게 “영원불변의 민족” 신화를 악용해왔는지, 어떻게 바이킹 약탈자들을 영웅화시켜 스웨덴인에게 근거없는 “자긍심”을 고취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상세히 나와 있었다.

“민족” 신화에 대한 관람자의 비판의식을 높이는 동시에 이 박물관은 계급이라는 현실에 그들의 눈을 돌린다. 1600∼1700년 전 초기 철기시대의 북유럽 귀족이 애용했던 로마제국 유리잔 등을 전시하면서 “오늘날 부유층이 고급 해외 사치품에 대한 똑같은 애착을 갖는 것이 아닌가”와 같은 내용의 해설서를 통해서다.

한마디로 이 박물관은 “민족”의 신화부터 계급의 현실까지 이 사회의 모든 것을 비판적 해부, 즉 회의의 대상으로 삼을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곳이다. 과연 대한민국에 이처럼 모든 것을 회의할 줄 아는 인간, 즉 모든 구속에서 벗어날 준비가 돼 있는 인간을 양성할 만한 제도적 장치들은 존재하는가?

비록 요즘 중국·일본 유물도 같은 공간에서 전시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고조선 때부터 존재해온 우리 겨레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과시하는 역할을 우선적으로 수행하는 서울의 국립역사박물관을 탓하기 어려운 이유는, 사회의 중심적인 제도·기관들이 “회의 정신” 기르기에 전혀 기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무게중심은 국가와 자본에 있는데, 특히 그들의 대외적 움직임을 비판적으로 해부하는 언론들을 과연 자주 볼 수 있는가? 예컨대 중동에의 원전 수출을 둘러싼 최근의 언론 보도 태도를 관찰해보기를. 실제로는 우라늄 채굴과 운반, 그리고 핵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방사능 누출의 위험성, 그리고 원전의 안전성 등에 대한 공방은 몇십년 동안 이어져 왔으며, 머나먼 옛소련의 체르노빌뿐만 아니라 가까운 일본 도카이촌 핵연료 처리시설에서도 10여년 전에 임계 사고가 나 2명의 아까운 생명을 잃은 바 있다.

그러나 문제덩어리인 핵을 비판적으로 해부해보는 목소리는, “수출 전선에서의 승리”를 자축하는 난리법석 속에서 크게 들렸는가? 그 생명인 비판정신을 포기한 지 오래된 언론부터 회의할 줄 아는 시민이 아닌 국가와 자본의 무조건적 응원자를 키우고 있으니 박물관만을 떼어놓고 책임을 논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인간이라는 사회적 동물은 계급사회의 테두리 안에서는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없지만, 그 상대적 자유의 가능성이라도 그나마 제공해주는 것은 바로 사회·정치·문화의 허실을 가릴 만한 회의 정신이다. 회의는 자유로의 길의 출발점이고, 그 길에 오른 사람만이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창조성에 충만한 사회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이 아니겠는가?




<권리를 위한 투쟁>
  
                    
법사회학의 아버지 루돌프 폰 예링(1818~1892)은 1868년부터 4년 남짓 오스트리아 빈대학 교수를 지냈다. 그의 강의는 어찌나 인기가 높았던지 매번 수백명이 몰려들었고, 수강생 중 한 사람이었던 러시아 황태자는 예링을 가리켜 “인류에게 법학의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라고 일컫기도 했다.

1872년 대학을 떠날 때 예링이 했던 고별강연이 저 유명한 ‘권리를 위한 투쟁’이다.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1년여의 법정투쟁 끝에 해임 무효 판결을 받고 다시 해임 효력 정지 결정을 끌어내 출근투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예링의 강연문은 14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꼭 대한민국의 오늘을 눈앞에 두고 낭독하는 선언문처럼 읽힌다.

예링은 법학자답지 않게 처음부터 끝까지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지만, 그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이다. 법은 들판의 식물처럼 아무런 고통도 노력도 없이 저절로 꽃피지 않는다. 정의의 여신이 왜 한 손에 저울을, 다른 한 손에 칼을 들고 있는가. 칼이 없는 저울은 무력하기 때문이다. 법의 생명은 투쟁이다.

예링의 모토는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당신은 투쟁하는 가운데 스스로 권리를 찾아야 한다.” 권리를 지키는 일은 단순히 이해관계를 다투어 내 몫을 챙기는 일이 아니다. 권리를 지키는 것은 모욕당한 인격을 되찾는 일이며, 공동체 전체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다. 자신의 권리가 불법적으로 침해당하고 있는데도 권리 위에 잠잘 경우, 자신의 권리만 침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상황에 처한 이웃의 권리까지 침해당한다.

그러므로 권리 침해에 저항하는 일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일 뿐만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예링의 권리투쟁은 숭고한 공동체적 사명이 된다.

일본의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는 예링의 명제,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은 보호받지 못한다”를 헌법의 차원에서 숙고해 좀더 일반적인 결론을 끌어내기도 했다. “국민은 주권자가 되었다.

그러나 주권자라는 사실에 안주해 그 권리의 행사를 게을리하면, 어느날 아침 깨어나 보니 이미 주권자가 아니게 되는 그런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자유도 마찬가지다. 마루야마는 말한다. “자유를 축복하는 것은 쉽다. 거기에 비해 자유를 옹호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자유를 시민이 매일매일 행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민주주의는 ‘자유의 실천’, ‘주권의 실천’을 통해서만 비로소 살아 있는 것이 된다.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민주주의적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 자유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도 끊임없는 ‘민주주의 실천’을 통해서 간신히 민주주의일 수 있다.

김정헌 위원장이 법정투쟁을 통해 해임 무효 판결을 이끌어내고 다시 행정소송을 벌여 해임 효력 정지 결정을 받아낸 것은 개인의 권익을 넘어 공동체의 권익을 지키는 ‘권리투쟁’의 사례이자 ‘민주주의 실천’의 생생한 본보기라 할 만하다.

김 위원장은 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장이 자신의 출근을 막고 사태의 원인을 김 위원장에게 돌리자 “왜 그렇게 깡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닙니까!”라고 나무랐는데, 여기서 말한 ‘깡’이야말로 예링이 강조한 ‘불법에 대한 투쟁 정신’일 것이다.

예링은 자신의 강연문을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빌려온 문장으로 맺었다. “지혜의 마지막 결론은 다음과 같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쟁취하는 자만이 향유한다.” 싸우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누릴 수 없다.

고명섭 책·지성팀장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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